어느 날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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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예언학과

  • 학과장: 안예정 박사

예언을 출력하는 존재들과 그들의 예언을 연구하고 이러한 정보들을 통계학을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를 산출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이들은 컴퓨터를 다루고, 예언 결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는 등, 전근대-근대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재단의 예언적 변칙성 응용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날 나는 광주에서 정읍으로 가는 재단 승합차 맨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몇 시간의 이동과 차량 안쪽에서 불어오는 인공의 봄바람의 건조성은 통계예언학부 연구원이자 행정처리관 업무를 맡은 여행자에게는 마치 수면제나 다름없었다. 안개와 바다 내음을 일련의 수면제로 표현했다던 무진의 소설가처럼 타인과 떨어져 있다는 그 안락함과 봄날의 햇살이 너무도 중독적이고 매력적인 침상이였던 것이다.

새 것인 목배개는 짓눌러진 채 소리 없이 있었다. 나는 잠과 깸을 가르는 그 영역을 겪으면서 고요한 숨을 내쉬었다. 그런 정적 상황 동안 창 밖 풍경은 몇 차례나 변환되었다. 광주 제05K기지는 산에 있고 목적지인 제145K기지도 그만큼 외진 곳에 있어서 녹음에서 출발햐여 도심을 궤뚫고 다시 녹음을 찾아가는 셈이다. 연회색빛이 감도는 승합차는 조용히 그러나 묵묵히 전라도를 돌아 정읍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다. 차 뿐만 아니라 재단의 운전기사들도 그러했다. 재단 관료제 하에 굳이 다른 말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내가 막 재정신으로 깨어난 것은 마악 차량이 제145K기지 통제로로 진입할 때였다. 수풀을 넘어 꽤나 큰 부지를 지배하고 있는 백색의 거대한 건물을 나는 보았다. 1960년대 세워진 곳이라 한국사령부 기지들 중에서는 꽤나 늙은 건물인데 낡았다는 생각보다는 창백한 곳, 병원이나 기도원과 창고 건물의 잡종 같은 곳에 가까워 보였다. 3월 말인지라 잡풀들이 마구잡이로 돋은 구역을 지나면 정돈된 기지를 둘러싸고 매화나무나 동백나무 따위 키 작은 나무가 섰으며 이름 모를 새 몇 마리가 공중을 스치고 지나갔다. 들은 말에 비해서는 안락한 곳 같아 보이기도 했다.

"기지로 진입합니다."

운전사는 언제나처럼 냉정한 어투로 말을 건넸다. 그러므로 나 또한 가볍게 목례만 보이는 것을 일종의 예의로 여기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다. 상호 간 예의에서 정성을 더 쏟을 여유는 없다. 어쩌피 둘 다 서로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더 가까운 시선을 돌렸다. 기지 외부에는 햇살로부터 얼굴을 모자로 가린 현장 요원 몇이 지키고 서 있다가 다가오는 승합차의 일련번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떡인다. 잿빛의 차는 소리 없이 미끄러지고 나는 가벼운 진동을 느낀다. 몸을 고쳐앉는다.. 이윽고 대략 위치의 합의가 끝난 모양인지, 내리라는 수신호가 보였다. 나는 힘을 줘 문을 우측으로 밀어내고는 땅에 발을 디딘다. 햇살이 생각보다 따갑기보다는 따스한 것이 기분이 나름 괜찮았다.

기지 안은 보기보다 쾌청하다. 초여름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깊고도 깊은 동굴의 서늘함 같은 느낌이 있다. 진입하면 탁 트인 복도가 보이고 벽면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145K기지 로고가 박혀 있다. 어쩐지 기지에서 프라이드적 느낌이 물씬 풍겨서 웃음이 지어진다. 앞으로 지내야 할 곳이다. 제05K기지만큼 표면 아래에서 들끓는 듯한 어떤 열기가 느껴지는 곳은 아니지만 재단 그 자체적인, 자연스러운 역동과 인원들의 기본적인 안녕이 있는 곳이였다. 아마도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터다. 조심히 주위를 살피며 걷기 시작한다. 마주치는 엄밀히 말하면 스친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자신을 맞이해주고 안내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해볼 수 없었다. 평균적이다.

막 코너를 돌았을 때, 나는 한 사람과 마주쳤다. 뒤로 묶어 내린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단정한 인상의 여성이다. 목에는 키카드가 걸려 있으며, 상하의 모두 단정한 칠흑의 정장을 입고 있다. 그는 내 얼굴을 잠시 확인하나 싶더니, 곧 알아보았는지 입을 열었다.

"이수아 연구원님이시죠? 통계예언학부의."

'아, 예."

나는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았다. 기지 곳곳에서 암암리에 방문자가 어디 상부 끄나풀일까 별안간 동요하거나 긴장하기 마련이었던 제05K기지 사람들과는 달리 제145K기지의 그는 어딘가 나를 검증해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믿지 못할 자라는 의미에서일지 혹은 정말로 기대의 그 손님에서라는 의미일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몇 초 후 그는 비즈니스적 미소를 지으면서 고요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꼭 동굴 저편이나 빈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반갑습니다. 남지혜 요원입니다. 그쪽 일정 안내를 맡았습니다…… 저도 바쁘긴 하지만, 기지에 그쪽이 하실 일이 더 많아서."

"아, 예…"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무표정한 시선으로 다시 한 차례 훑어보았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왜 그러는지 알아낼 수 없다면 신경쓸 필요는 없다. 오래 볼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는 주머니의 호출기를 꺼내 몇 차례 알 수 없는 곳으로 누르고는 손짓했다.

"따라오시죠. 아무래도 해야 할 일이 많으시니까요."

기지마다 담당하는 것들은 있지만 그렇다고 양식집과 일식집이 다르듯 아주 명백히 차이나지는 않는다. 제12K기지는 수없는 변칙 물체를 담당하며 제35K기지는 다양한 야생 동물을 격리한다만 그와 별개로 제145K기지에도, 제21K기지에도 유령을 격리하는 시스템은 있다. 이 때문에 제145K기지에도 예언학적 변칙 개체가 나름 몇 개 존재하여 직접적인 상호작용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담당하러 온 사람이 나, 이수아 연구원이다.

제145K기지 내에는 총 다섯 예언변칙 개체가 있다. 그리고 파일을 읽고 몇 번이나 검토해본 바,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서서 파일 몇을 들여다보고는, 앞서 걸어가던 여자에게 확인을 위해 물었다.

"첫 번째로 봐야 할 게 인간형… 맞죠?"

"예. 그렇습니다. 문제라도?"

사실 인간형 개체를 다루는 데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사령부 사람들이 똑똑한 작전을 세워서 진로를 하나부터 열까지 정해주겠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좋든 싫든 인간형 개체는 인간이고, 재단이 아무리 이를 부정하든 탈개념하든 해 봤자 직접 조우하게 되면 아무런 의미도 감동도 없을 당황이 몰려올지 모른다. 나는 안경을 고쳐 썼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일이였다. 어쨌거나 제145K기지는 인간형 격리기지 중 하나니까.

"…아뇨. 문제 없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지하 3층. 인간형 격리동으로 향했다. 발소리가 명확한 음질으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특수 격리 절차: SCP-████는 제145K기지 표준형 인간형 개체 격리실에서 격리한다. 하루에 1번 담당 인원은 면담을 실시하여 SCP-████로부터 산출할 수 있는 정보를 기록하도록 한다. SCP-████의 진술은 보관되어 당일부터 2일 후~2주 후에 인근에서 발생할 상황과 비교하거나 특정한 경우 이 상황에 대비하도록 한다. 만일 얻어낸 정보가 기밀이나 위협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경우 즉시 기지 이사관보에게 보고해야 한다.

설명: SCP-████는 현재 만 16세의 한국계 여성이다. 대상은 III급 예언 산출 개체Oraclebring-entity로 무의식적으로 2일~14일 후의 미래 상황에 대한 시각적 환각을 경험하며, 이러한 환각은 대개 5초 내로 종료된다. SCP—████는 이러한 미래 상황 자체를 확인하지만 이는 자신이 겪을 미래 상황에 대한 1인칭으로 한정된다. SCP-████는 이러한 변칙성에 대해 일반적으로 거부감을 보인다.

SCP-████가 경험하는 시각적 환각이 짧고 단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해석하고 정확히 어느 시점에 발생할 상황일지 가늠하는 것은 몹시 어려우며 모든 정보가 대상의 진술에 의존한다는 것 또한 완전한 판단이 어렵다. 또한 이 환각은 간혹 몹시 지리멸렬한, 단편적 상황의 연속으로도 발생한다. 만일 SCP-████가 환각 내에서 시계, 달력, 혹은 계절감 등의 요소를 본다면 이를 통해 보다 정확한 예측은 가능할 것이다.

만약 채은서가 그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 봤더라면 그는 아마 그렇게 독백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채은서를 모함했음이 틀림없다. 그녀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자수한 것에 가까웠다. 비록 잘못 아닌 잘못이지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채은서는 자신의 잘못 아닌 잘못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채은서가 중학생이었던 때부터 시작된 그 일련의 저주가 더욱 최악인 것은, 이것이 사실은 채은서만이 알고 있는 비밀도 아니었단 점일 것이다. 그것이 채은서가 왜 어느 풀숲에 세워진 흰 건물 어느 독방에 갇혀 있는 이유다.

미래를 볼 수 있되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날 저녁 채은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재단 요원에 붙잡힐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채은서는 곧장 그 체포가 예정된 장소로 찾아가서 붙잡혔다. 무기력함과 무능함이 운명 아래서 작동하게 되면 인간은 종이 인형이 되어 버린다. 채은서도 그날 가장 조용히 운명에 탑승했다. 2년 전 일이었다.

침대 하나, 표준형 침대 하나, 그리고 요청했을 때 선심 쓰듯이 건네 준 오락거리 등등. 만화책과 소설 몇 권이 당연히 통째로 편집된 2년을 대체할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채은서는 결국에는 그럭저럭 격리 하에서 지내게 되는 대강 90% 정도의 다른 인간형 SCP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한 모든 일들에도 채은서는 여전했다. 여전히 미래를 보면서 불가능한 일들을 상상했다.

당연한 일이다.

이천이십년 사월 팔일.

채은서는 밤 열한 시 침대 위에서 조용히 숨을 쉬면서 잠과 깸의 사이에 있다. 밤 공기는 격리실일지언정 낮보다는 차가운 기분이 들며, 폐에까지 고요함이 스미기도 한다. 그리고 그 중간. 무의식의 도입부로 접어드는 그 순간에서 채은서는 눈을 뜬다. 불규직적이고 무례한 환영이 불쑥 찾아오는 그 순간 시야가 푸르러지면서, 풍경으로 재돌입한다. 바람이 아무 곳도 아닌 있지도 않은 곳에서 불고 페트리코어가 코끝으로 느껴진다. 그 밤, 채은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숲을 누비는 것을 본다. 재단 인원들일 것이다. 그들은 숲 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이후 땅에 묻힌 남자의 시신을 찾아낸다. 세 군데에 총상을 입었고, 일그러진 표정이 보인다.

메스껍지만 꿈이 아니다. 채은서는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내일 담당 연구원에게 건네줄 메모장을 만들기로 한다. 언제든 쓸 수 있도록 탁자 위에 메모장 몇이 놓여 있다. 채은서는 볼펜으로 메모장 몇 장에 각각 숲의 모양과 남자의 얼굴을 그려두고 줄거리를 요약한다.

이천이십년 육월 십구일.

채은서는 탁자 위에 놓인 샌드위치를 베어 물 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마치 눈앞에서 박수를 치는 것에 대한 반응처럼, 몸이 잠시 멋대로 움직인다. 그러고는 시야에 보이는 것이 잠시나마 달라진다. 하얀 벽이 물러가고 이질적인 색깔이 펼쳐지면서 채은서는 그때 새로운 가 보지 못한 것을 꿈꾸기 시작한다. 꿈이라기보다는 강렬한 환각이나 황홀에 가깝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눈앞에 붉은 공간이 보인다. 사람들이 홀린 듯이 두 사람에게 달려들고, 그들은 타개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몰려드는 군중들이 계단 위 어딘가로부터 덮치듯 접근하면서 두 사람은 위기에 놓인다. 남자가 삼단봉을 고쳐 들며 여자는 조용히 그 상황을 노려본다. 풍경은 30초 후 끝난다. 채은서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 한 무리의 군중은 왜 뭉쳐 있는지, 혹은 그 두 세력이 왜 마주보는지나 심지어 무슨 일이 있었고 이후에 있을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30초 정도의 시간이 채은서가 볼 수 있는 것의 전부다. 사람은 사진만 보고 그곳이 어디인지 맞출 수 없다.

채은서는 조심스레 샌드위치를 내려놓는다. 그리곤 다시 메모장에 기록한다.

이천이십일년 십이월 구일.

채은서는 불분명한 형체의 녹색광이 혜성처럼 빠르게 어느 숲으로 내려꽂히는 모습을 본다. 마치 번개 같은 속도와 빛에 그는 눈을 찌푸리면서 깨어난다. 그 밤이 언제인지 혹은 그 빛이 무엇인지 채은서는 예측할 수 없다. 그게 끝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기록 뿐이다.

이천이십일년 사월 십오일.

채은서는 자신이 재단 격리 하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생각의 계기가 된 당일의 환상에 대해 기록하면서 채은서는 되뇌인다. 예언자. 혹은 재단 나름대로는 예언산출자, 혹은 초감각자. 그런 비슷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채은서는 자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뇌인다. 미래를 볼 줄 아는 것은 일련의 저주나 고통이라는 생각만이 든다. 모든 기록으로 남겨진 환상은 특수 격리 절차에 의해 재단으로 전달되도록 되어 있다.

그게 의미가 있다면 재단이 이런 구체적인 단편 필름에서 어떠한 정보를 선출해내고 미래에 대응하는 영역이겠지만, 채은서가 보는 미래는 바꿀 수 없다. 운이 더 좋았더라면 재단에게 구금되던 그 예언을 보고 방 안에서 지독하게 떨던 그 공포와 경계가 미래를 바꿨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점이, 그야말로 천 년의 고통이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웅크린다. 바꿀 수 없음의 대명사는 운명이다. 그리고 단지 조금 앞을 내다보는 것에 삶의 의미가 있는지 채은서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날, 열일곱짜리 소녀가 자신에게 백 번 묻는다.

가느다란 손에 쥐인 볼펜이 곡선을 그린다. 채은서는 한순간 자신과 일억 이천만원 정도는 나갈 비싼 날씨 예측용 장비와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한다. 왜인지는 역시나 딱 떨어지게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채은서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인생 최대의 수치로 느끼지만, 그해 인공위성들도 구름 위를 인생 최대의 속도로 공전하고 있다. 그리고 내일의 날씨가 될 단서를 찾아내고자 한다.

채은서는 메모장에다 검은 잉크로 칼이 목을 찔러, 선홍색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사람의 내역을 그린다. 꿈결보다 강한 그 일련의 장면 속에서 남자는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마치 은서가 미래를 보듯 훤히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발버둥치면서 헛된 수고를 했다. 어쩌면 '그랬기에 발버둥쳤다'가 아니라 '그럼에도'가 맞는 표현일지도 몰랐다. 칼은 이미 남자의 피부로 진입하며 마주하는 모든 핏줄을 찢어 놓았다. 남자는 미래 언젠가 죽을 것이지만, 채은서는 남자가 누군지 혹은 왜 죽는지 알 수 없었고 재단이 이 정보를 알아내고서 남자를 설령 죽지 못하게 막아낸다 해도 남자는 죽는다.

그리고 이천이십이년 삼월 이일.

그날 아침, 채은서는 격리실 근처에 딸린 면담실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차가웠고 무심한 감각이 강해서 의지는 커녕 앉아 있는 것조차 그다지 심신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위에 앉았을 때 채은서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뺨에 서린 냉기에 까만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그 상태로 상대편에 앉은 사람을 응시했다. 아직 고등학생뻘 나이이며 까만 머리에 약간 병적인 인상이 두드러지는 채은서와는 달리, 상대편에 앉은 여자는 날카로운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보다도 더욱 명백한 것은 몸 전체와 표정 전체에 감도는 일련의 불만이어서 채은서는 배로 긴장한 채 몸을 숙였다.

평소 얼굴이 익은 담당 연구원이 아니고, 그렇다고 호의나 다른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표정도 아니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SCP-████."

여자가 입을 열었다. 명칭을 부르는 어투조차도 단정적이었다. 채은서의 다른 이름이자 이제 사실 더 많이 불리는 일련번호이기도 한 그것이 여자의 입에서 벽돌처럼 가공되어 나오는 모양새다. 채은서는 네, 하고 짧게 대답하고서는 시선을 피했다. 상대가 관심있는 것은 어쨌거나 정보다. 채은서의 말과 주장이 중요하지 채은서 자체를 죽일 리는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톱을 지긋이 물었다. 결론적으로 상대는 그를 해칠 존재는 아니다. 일단은.

"예, 당신의 미래 인식에 대해서 질문 몇 가지를 하겠습니다."

잠시 침묵. 여자는 파일을 올려놓는다. 두꺼운 것이며, 클립 몇 개가 그나마 이것이 몇 개의 지각이 합쳐진 층이라는 것을 귀띔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할 말이 많다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은 아니며 그것이 물론 중요한 일이라 해도 그렇다. 채은서는 이제껏 아주 중요한 일을 맞닥드린 적이 없다.

그게 채은서가 납득한 삶의 기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고 해도, 한 시간짜리 면담조차도 각오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채은서의 방식이었고 불행히도 재단 연구원의 평균일 상대는 그렇지 않을 예정이었다.

"자세히, 그리고 거짓 없이 대답해주셔야 합니다."

채은서는 고개를 끄떡였다. 잠시나마 기지 어딘가에서, 질풍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채은서는 몸을 떨었다. 이유는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채은서, 혹은 SCP-████는 분명 그 전날 밤에 기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격리 파기를 꿈꾸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이 바꿀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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