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기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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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썅… 무슨 중학교 숙제도 아니고 과제가 웬 진로 면담이야?"

그는 자신의 고시원에 있는 책상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워낙 좁은 방이라 책상도 마치 중학교 책상에 앉아 있는 듯했다. 분명 교수는 강의를 듣는 학생 전부를 어리바리한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뻔했다. 중학교 때에도 해본 적 없는 숙제로 과제를 내주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이가 없다고 과제를 쌩 깐다면 학점에 무리가 갈 것이 뻔했다. 대학교 1학년부터 그런 멍청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마음에 그는 노트북을 키고 위잉 거리는 작동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는 안경을 코에 걸치고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면-담-과-제-기-업-소-개, 엔터 버튼을 누르자마자 본 것은 SCP 재단이라고 쓰인 불길한 검붉은 색의 볼드체로 처리된 글씨였다. 기업의 주소와 그 옆 기업을 대표하는 상표 이미지 칸에는 타원 형의 동그라미에 네모난 혹 세 개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그 속에는 화살표 세 개가 또 다른 동그라미에 걸쳐진 채 동그라미의 가운데로 향하고 있었다. 뜬금없이 이 기업만 소개되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의 생각은 미처 그 의문까지 닿지 못했다. SCP 재단이라니, 조금 생소한 이름인데.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려 시선을 기업 설명 칸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놀랍게도 흰색으로 가득한 스크린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뭐지? 로딩이 덜 된 건가? 하지만 인터넷 창에 있는 로딩 중에 뜨는 초록색 선은 보이지 않았고, 와이파이도 멀쩡한 상태였다.

그는 잠시 속으로 고민을 했다. 인터넷이 이 기업을 추천해준 이유가 분명 있겠지만, 이유는 설명이 존재하지 않은 탓에 확인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보통 감이라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회사를 가지 않으면 뭔가 큰 일이 날 것만 같은 감이 느껴졌다.

결국 그는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에 일어났다. 아침 6시에 일찍 일어나 씻고, 싸구려 계란과 전자레인지에 데우다 만 밥을 우물거렸고, 옷장에서 딱 한 벌밖에 없는 나름의 고급 정장을 꺼내 입었다. 거울을 보니 나름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있었다. 꽤 잘생겼단 말이지, 그는 얼굴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빠른 속도로 구두를 신고 고시원 밖으로 나가 조금 걸어서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정구2동 호성, 버스로 약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는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유 모를 설렘과 흥분에 도취되어 있었기에 그런 사소한 의문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번 정류소는 정구2동 호성, 정구2동 호성입니다. 그는 버스 카드를 꼭 쥐었다.


"안됩니다."

순간적으로 그는 경비원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가는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써야 할 것이 뻔했기에 그는 그저 얼굴을 찌푸리고서 도대체 왜 안된다는 겁니까? 라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릴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기밀 사항이기에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경비원이 딱딱한 어투로 대답했다.

"하, 정말… 저는 그냥 학교 과제로 진로 면담하러 온 거라니까요?" 그는 매달리듯이 대꾸했다. 순간, 경비원이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챈 듯 눈빛을 바꾸었다.

"…어디서 정보를 얻고 오신 건지- " 경비원은 말을 하다 말고 순간 느껴지는 기척에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는 경비원을 따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요?" 그곳에는 깔끔한 흰 가운을 입고 있는 키가 큰 연구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여성은 검정색의 슬리퍼를 끌며 그와 경비원에게 다가왔다.

"아, 이분이 자꾸 침입하시려고 그래서 말입니다." 그는 순간 침입이라는 단어에 짜증과 궁금증을 품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러자 연구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말했다. 아, 절 따라오시죠.

"예?" 경비원이 당황한 듯 내뱉자 그는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저 따라오시라고요, 경비원 씨는 가만히 계시고." 여성의 말에 그는 마치 구원을 받은 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여성이 따라가기도 전에 기쁜 나머지 빠른 속도로 건물을 향했다. 여성은 웃으며 경비원에게 귓속말을 했다.

"여기에 처음 배정되셨죠?" 여성이 속삭였다.

"네, 어떻게 아셨는지…" 경비원이 뜸을 들이면서 말했다.

"여기가 다른 기지보다 경비가 허술한 이유가 있어요, 망할 SCP인지 SPC인가 때문에… 어쨌든 수고 하셔요." 여성은 경비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불량한 자세로 경비원으로부터 멀어졌다.

"…직장을 잘못 구한 것 같아…" 경비원은 중얼거렸다.


"어… 그래서 여기는 무슨 곳이에요?" 그가 여성이 건넨 자판기 음료를 받았다.

"뭐, 간단히 하자면 병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성이 자판기에서 음료를 꺼냈다.

"병원이요?" 그가 음료의 뚜껑을 따려고 끙끙거렸다.

"맞아요, 병원. 여기에는 아픈 아이들이 많이 있거든요. 어떤 애들은 너무 아픈 나머지 다른 애들 해치려고 하기도 하고… 아니면 저희를 해치기도 하고요. 저희는 그런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에요." 여성이 음료의 뚜껑을 쉽게 따면서 말했다.

"그렇구나… 그러면 정확히 뭘 하세요?" 그가 따지 못한 음료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품속에 있던 노트와 펜을 꺼냈다.

"아닌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심각한 상태라서 사회와의 격리가 필요해요. 그래서 저희는 격리 방법을 연구하죠. 저희를 제외한 다른 부서는 약을 연구하거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간호사들을 교육해요." 여성은 그가 쓰는 메모의 내용을 잠시 관찰하고는 음료를 마셨다.

"그러면, 그 간호사들은 뭘 하세요?" 그가 메모를 적으며 말을 꺼냈다.

"만일의 사태라면 역시 격리가 실패하는 걸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어서 저희는 그런 아이들의 격리가 실패한다면, 이라는 전제를 깔고 훈련을 해요.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며 벗어나려고 하면 다정하게 약을 먹여준다거나, 딸기 맛 마취를 해주죠. 정말 심각한 경우에는 슬프지만 오랫동안 잠에 들게 하기도 하죠. 슬픈 일이에요." 여성은 우울한 듯이 세기를 줄이면서 말을 마쳤다.

딸기 맛 마취라니, 표현도 참… 괴짜같네. 그는 잠시 생각했지만 금세 그 생각을 떨쳐버리는 데 성공했다. "정말 수고하시네요, 그러면 어디서 후원을 받으시는 거에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것 같은데…" 그는 메모를 잠시 멈추고 여성을 바라보았다. 여성은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보통 정부에서 후원을 많이 받죠. 저희는 꽤 큰 병원이라, 기업이라고 해도 무방해요. 정부에서 후원을 받아서 나라를 위해 쓰는 거죠. 여기서 만든 약이 상용되기도 해요." 여성은 다시 활발한 상태로 돌아와 대답했다.

"오… 정말 대단하네요. 저는 인터넷에서 찾아 봤을 때 설명은 없고 그냥 SCP 재단이라는 문구만 떡 하니 떠서 당황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굉장한 곳이었네요." 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아, 그렇죠." 여성은 뭔가 눈치챈 듯이 말을 끊었다. 하지만 그는 그 미세한 순간을 눈치채지 못하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대중에는 저희가 잘 안 알려져 있기는 해요. 그래도 그렇지, 설명이 아예 없는 건 너무 했네요." 여성도 그를 따라 쿡쿡거렸다.

그가 쿡쿡거리는 걸 멈추자, 여성이 말했다. "저희는 언제나 일손이 부족해서 언제나 신입을 환영하는 차원에서 여기에서 며칠 묵으면서 교육을 가볍게 받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해요. 아마 대학생이신 것 같으니, 내일까지 한 번 해보실래요?"

"정말요? 그렇다면 저야 영광이죠!" 그가 기쁜 듯이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하, 그래요." 여성이 웃었다. "그러면 금방 사람을 부를게요, 하룻밤 묵을 방을 안내해 줄 거에요." 여성은 잠시 어딘가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서 기다렸다. 몇 분 뒤, 여성보다 키가 조금 작은 정돈된 옷차림의 피곤해 보이는 남성이 여성과 함께 나타났다.

"이 분이 방까지 이동해 주실 거에요. 저는 이만 연구를 진행해야해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여성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배웅해 주었다.

"그쪽도 좋은 연구하세요!" 조금 바보 같아 보이는 인사말이었지만, 여성은 개의치 않은 듯 짧은 웃음 소리를 내어 주었다.


"에휴, 미친놈… 그냥 나를 바로 부르면 됐지, 왜 사람 좋은 척 하면서 일반인한테 다 설명을 해주냐? 혼반이었으면 어쩌려고!" 피곤해 보이는 남성이 여성을 꾸짖었다.

"헤, 신원 조회 해보니까 혼반도 뭣도 아닌 일반인이더구만. 그리고 귀엽던데? 내 취향이었다." 여성이 눈을 반짝거리며 씩 웃었다.

"아오 이 미친…" 남성이 마른 세수를 했다. "그래도 이 원수야, 일반인 뒷목에 기억 소거제 놓는 내 생각도 좀 해줘라… 내가 수습 다 했어, 재단 소속 위장 기업 기억을 주입한 것도 내가 했다고! 그 충격받은 얼굴을 보는게 몇 번째인지, 가늠도 안 가!"

"하하! 뭐 어때, 아무리 이 동 전체에 기억 소거제를 분사 시켜봐야 격리 실패는 종종 일어난다고! 어차피 심각한 아이들 축에도 안 끼더만!" 여성이 당당한 말투로 대꾸했다.

"심각한… 뭐? 너 그 일반인한테도 이렇게 설명했냐!" 남성이 도망치는 여성을 향해 소리쳤다. 하하하! 즐거운 여성의 웃음 소리가 흐려졌고, 오늘도 제97기지의 날이 저물어 갔다.


등급: 유클리드(Euclid)

특수 격리 절차: 해당 SCP는 불규칙한 주기가 특징이기에, 매달 혹은 격리 실패에 따라서 F급 기억 소거제를 정구2동 전체에 액상 형태로 분사 시킨다. 격리 실패가 일어난다면, 제97기지로 침입하려는 일반인들은 모두 B급 기억 소거제를 주입받아야 하며 이후 주거지로 돌려보내진다.

설명: 해당 SCP는 대한민국 정구2동 전 구역에서 발생하는 변칙 현상이다. 불규칙한 주기를 특징으로 하며, 주기가 지나고 난 후에는 정구2동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중 1명에서 최대 9명 11명까지의 사람들이 정구2동에서 가장 가까운 기지인 제97기지로 침입을 시도하려 한다. 변칙 현상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보통 대학생, 취업 준비생, 구직자로 비교적 어린 나이의 성인이다. 이들은 침입을 시도 하면서 약간의 강박(기지에 침입해야 한다는)과 긍정적인 감정(설렘, 기대 등)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이 제97기지의 위치를 알게 되는 경로로서는 인터넷이 가장 대표적이며, 그 다음으로는 정체불명의 구인 전단지, 수신자 불명으로 보내지는 구인 메세지들이 있다.

이들이 제97기지로 침입하려 시도하는 방법들은 인도적이나, 이를 이용해 재단에 침입할 수 있는 혼돈의 반란과 헷갈릴 여지는 충분하기에 해당 SCP와 관련이 있는 모든 문서는 3등급 이상의 인가를 가진 인원만 열람이 가능하다.


"여기에서는 무슨 일들을 하나요?" 그가 메모를 이어가면서 피곤해 보이는 남성을 따라갔다.

"네, 이곳에서는 아픈 아이들을 위한 약을 개발합니다." 피곤해 보이는 남성이 답했다.

"그리고 관련 재단에 약을 배송하죠." 남성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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