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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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다. 그 작은 한 송이 한 송이가 서서히 하늘에서부터 내려온다. 멍하니 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점차 그 양을 늘려가며 내린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눈 알갱이가 알알이 바닥에 떨어지며 작은 점을 만들어나간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잊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본다. 손에 든 불붙은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자아내는 담배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멍하니 서있는다. 딱히 내가 할 일이 남아있지는 않기에 다른 사람들은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어차피 상황은 종결되었으니 남은 건 후속 처리밖에 없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이제 차를 타고 직장으로 돌아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타고는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매 쥐며 자판을 두들기는 일뿐이다.

휴일이라고 딱히 놀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한데 모인 건 언제였던가.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실 때까지는 모였었지. 그땐 재단에 몸을 담기 전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다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고, 선물을 교환하곤 했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 뭐였더라….

"앗 뜨거."

멍하니 있다 보니 담배가 다 타버린 모양이었다. 불붙은 부분이 짚고 있던 중지 쪽까지 타고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손을 터니 꽁초가 바닥에 떨어진다. 반밖에 피지 않았던 것이기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발로 비틀듯 밟아 남은 불을 끈다. 저번에 일본 여행을 갔다가 괜찮아 보여서 한 갑만 산 거라서 조금 아쉽다. 그래도 개인적 취향에는 원래 피우던 담배가 더 맞으니까 빨리 펴서 없애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작게 혀를 차고는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더 꺼낸 뒤 입에 물어 캡슐을 깨고는 불을 붙인다. 연기를 들이마시니 블루베리 같은 향이 밀려온다. 참 특이하다.

"다 끝났습니다."

다른 요원이 다가와서는 내게 말한다. 한 모금을 다시 들이마시고 고개를 끄덕인다. 요원은 들고 있던 상황 경위서를 넘기고, 담배를 들지 않은 손으로 받아서는 본다. 길거리에서 변칙 예술 작품을 전시하던 변칙 예술가를 생포. 현재 예술가는 안전 가옥으로 이송되어 면담 진행 중. 전시된 작품을 관람한 일반인 및 근처에서 작품이 전시되었음을 본 일반인들에게 C급 기억 소거 진행. SNS에 작품에 대한 정보가 올라갔을 수 있으니 역정보 부서 쪽에 연락함. 전시되어있던 예술 작품들에는 위험한 변칙성이 없음. 다행이다. 위험한 변칙성이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하기 싫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은 거. 추락하기는 했지만 작품 자체는 얼마나 평화로워. 지난번에는 자주 출동하던 장소에서 예술가들끼리 전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나중에 자료 확인했는데 부서가 출동하기 전에 저들끼리 공멸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경위서를 넘겨준 요원에게 수고했다 말해주고,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뒤 현장을 둘러본다. 군중 통제용 인지 경계선 안쪽에서 다른 요원들이 예술가가 설치해둔 작품을 카트에 올리고 있었다. 변칙성을 확인하던 현장에는 나도 있었다. 사람의 시선이 있으면 발레를 추는 조각상. 보고 있으면 파도 소리가 들리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저녁 바닷가 그림. 몸이 따뜻해지는 화창한 날의 공원 그림.

작품이 천에 덮여 하나하나 트럭 위에 실린다. 모두 실어 올리고 내가 손짓을 하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요원이 트럭에 시동을 걸고 현장에서 벗어난다. 트럭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천에 조금 쌓여있던 눈이 뒤로 흩날린다. 상황이 완전히 종결되었다. 다른 요원들은 전부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한 명 한 명 차를 타고 현장에서 떠나간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요원도 내게 인사를 건네고는 떠나갔고, 남아있는 것은 나뿐이다. 손에 든 담배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쭉 빤 뒤 바닥에 버린다. 블루베리 향 연기가 하늘에 흩날린다. 그 연기를 눈송이가 뚫고 바닥에 떨어진다.

지금쯤 오빠는 뭘 하고 있을까.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들어간다. 아까부터 계속 세워놓은 탓에 차 유리에 눈이 약간 쌓였다. 와이퍼를 작동시켜 눈을 쓸어낸다. 올해는 파티가 없다. 크리스마스 저녁도 계획해놓은 게 없다. 선물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작년도 그랬고, 재작년도 그랬다. 가끔은, 일이 있더라도 잠깐 제쳐놓고 따로 시간을 빼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전화기가 작게 진동한다. 확인해보니 메시지가 한 통 와있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오빠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연말에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곤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오빠는 자주 늦게까지 일하곤 한다. 지금도 어쩌면 퀭한 눈으로 실험 보고서나 다른 서류 작업을 하는 와중에 문뜩 창밖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는 문자를 보낸 것이 아닐까. 그 광경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면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바로 답장을 작성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내일 잠깐 보자. 시간이 없어도 우선순위 일 순위로 놓을 것. 송신.

무슨 선물을 살까. 오빠 특유의 희미한 미소를 볼 생각에 절로 입가가 씰룩인다. 피로한 눈을 위해 따뜻해지는 기능이 있는 안대를 살까. 아니면 오래 서류 작업을 하니 손목 보호대를 하나 살까. 것도 아니면 영양제라도 좀 살까. 뭘 같이 먹을까. 기지에서 크리스마스 특식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매년 먹는 건데. 그러면 같이 요리라도 할까. 무얼 만들까. 구운 닭고기? 감자 샐러드? 불고기? 보쌈? 크리스마스니까 케이크라도 하나 사놓으면 분위기가 살 텐데. 오빠는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하지. 아직 빵집이 문을 열었을까. 남아있는 케이크가 있긴 할까. 없으면 만들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차에 시동을 건다. 라디오에서 시보가 흘러나온다. 삑. 삑. 삑. 삐익. 12시가 지났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끝나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시보가 끝나자 일기예보가 나온다. 밤부터 내리는 눈은 아침까지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점차 내리는 눈송이가 굵어진다. 대로로 나오자 사람들이 하나둘 우산을 쓰기 시작한다. 와이퍼의 속도를 올린다. 전화기가 다시 진동하며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지만 구태여 확인하지는 않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마커스.
메리 크리스마스, 마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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