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7)

 
레버는 우두커니 카페 한구석에 앉아 빈 플라스틱 컵을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내일이면 기지로 복귀해야 한다. 그는 무기력하게 시간을 축내면서 이번 사건의 종장에 대해 생각했다.

리치먼드 허드슨은 구치소 안에서 자살한 상태로 발견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최후였다. 힐러리 크래들은 여전히 셔크 하우스의 안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실제로 저택의 소유가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비극에 대해 그리고 리치먼드와 힐러리의 관계에 대해 수군거렸다.

데이비드 샌들러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사한 채로 발견됐다. 그가 화이트를 붙잡기 위해 옥상 난간을 향하여 뛰어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손수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화이트는 계속 다른 희생양을 찾아다닐까? 그렇다면 또다시 어디선가 하얀 물건들을 구해와서 그들에게도 술래잡기를 시킬까? 어쨌든 당장은 누군가 무더기로 질식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화이트는 똑똑한 여자니까. 당분간은 조용히 숨어지낼 것이다.

헛물을 켠 재단은 대규모 조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한다. 어쩌면 레버가 다시 고문으로 참석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화이트를 찾아낼 수 있을까? 농락당하다가 다 쓴 장난감처럼 다시 버려지는 건 아닐지. 그녀 앞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는 단지 맥없이 쓰러질 뿐이다.

그런데도 섀넌은 오히려 의욕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클레멘스의 죽음을 겪고 난 뒤에도, 그녀는 그것을 극복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었다.

"저도 계속 싸울 거에요, 베일리 씨. 당신이 말해준 덕분에 제 적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적수가 생긴 그녀라면 그럴 수 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싸우면서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도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레버는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무력함을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는 화이트를 놓쳤다. 그것도 눈앞에서 그녀의 환상에 속아 넘어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레버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의 맞은편에 회색 옷을 입고 중절모를 쓴 남자가 다가와 앉았다. 레버는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남자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더니 레버가 하던 것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를 놓쳤군요."

레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치먼드 허드슨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한 남자가 있었지.

"당신은 누굽니까?"

"아무도 아니오."

레버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눈이 바라보는 곳을 따라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과는 있었습니까?"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이 취하고 있는 바로 그 행동처럼 관조적이었다.

"그녀는 손수건에 깃들어 있습니다. 알아낸 것은 그게 답니다."

"그렇군요."

남자는 레버의 손에 들린 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레버의 눈을 응시하기 위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확신할 수 있습니까?"

레버가 움찔하며 컵을 떨어뜨리고 맞은편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도 아닌 남자는 레버의 시선을 훑더니 천천히 일어나 중절모를 살짝 기울이고 인사를 건냈다. 그는 카페 밖으로 나가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레버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건너편의 테이블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 캔버스가 앉아있었다.

레버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걸어가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네 이름이 뭐지?"

그녀는 자신의 컵을 들여다보며 얘기했다.

"제 이름은 릴리에요."

레버는 그의 가슴 속이 갑자기 샘솟는 흥분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열정적인 눈동자를 번득이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널 잡을 거야, 릴리. 널 꼭 잡아내겠어."

릴리는 그를 올려보며 도전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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