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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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해는 길타쳐두 간나해는 반반하니 곱지 않소. 시커먼 중놈 사이에 한 떨기 꽃이라, 어데 보자, 오호 산나해도 본이 본인지 꽤나 곱상하군……. 아무리 그래도 요물 아니요. 어허 이 사람아, 요물이니 되려 뒷탈이 안 남는거요…….

범종 치는 소리에 산나해는 눈을 떴더라. 제 누이인 겨집은 산나해의 가슴으로 파고들었으되, 둘 다 여시의 형상이라. 산나해가 뒷다리로 턱을 긁으매, 그 기척에 겨집이 깽깽거리더라. 산나해가 둔갑을 하여 인간의 의복을 갖추고, 커단 수건을 머리에 둘러 귀를 감추니 건장한 장정의 모습이라. 겨집은 잠결에 겨워 꼬리를 둥글게 말으니, 산나해가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라. 그제야 겨집은 둔갑을 하였으나, 제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매 산나해가 손수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겨주니 완연히 오뉘의 상이라. 단장이 끝나니 겨집은 옷이 불편한 양 몸을 가치작거리니, 산나해가 가만히 있으라 어깨를 잡는도다. 문 두딜기는 소리가 들리고, 곧 목소리가 뒤따르되,

이 매구 새끼야, 의복은 정갈히 하였느냐?

산나해가 문짝을 두딜겨 신호를 하니 목소리가 다시 묻되,

매구 새끼야, 늬 백치 누이도 옷을 다 입혔느냐?

산나해가 다시금 문을 두디려 신호를 보내니 그제야 잠글쇠가 풀리더라.

하이고매, 시간도 참 징허다. 늬들이 난리친거이 벌써 오년 전의 이야기니, 시간 한번 빨리 가는도다.

하며 어린 중놈이 말하되, 바로 몇 해 전의 동자승이라. 산나해가 조심히 방을 나서니, 겨집은 가지 말라는 듯 짖는구나. 어린 중이 방문을 닫으니, 겨집이 그 문을 긁더라.

고년 참 예쁘다.

어린 중이 희롱하듯 산나해에게 말하니, 산나해는 고저 땅만 바라더라.

어서 가자, 자향 스님이 혼내실라.

하며 어린 중이 바삐 가되, 자향이라 함은 몇 해 전의 객승의 법명이라. 산나해가 어린 중의 뒤를 따르니, 다른 스님들은 참선하러 바삐 가고 있더라.

왜, 부럽느냐? 허나 너는 버버리에 까막눈에 즘생이라. 대체 전생에 뭔 죄를 지음 그리 되는게냐?
어허, 요놈이 또 불쌍한 아해를 두고 놀리는도다.

어린 중이 놀라 뒤돌되 그는 객승 자향이라.

흥, 그대가 아무리 높다손 쳐도 내가 당취론 선배라.
요 조동아리, 요 조동아리!

자향이 웃으며 어린 중놈의 조동아리를 치니, 고 놈은 곧 풀이 죽고 말더라.

금일 고 입을 놀리지 말지라.
흥, 너무하오.
그리 알고 참선하러 물러가라.

어린 중이 물러나니 객승 자향과 산나해 뿐이라.

늬는 나를 따라오라. 주지스님께서 명을 새로이 하셨더라.

객승이 산나해의 맘을 헤아리고 덧붙이니,

걱정은 마라. 네 뉘의 방 열쇠는 내게 있도다.

그제야 산나해의 표정이 밝아지더라. 그 둘은 걸어걸어 절간에서 조금 떨어진 암자로 들어가니, 천지는 고요하고 다만 잠이 깬 새소리 뿐이더라. 인기척은 들리지도 않으니 자향은 조심히 암자의 문을 닫더라.

너는 입을 열어 말을 하라.

자향이 명하니, 산나해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드디어 입을 열더라.

자향 스님, 오늘은 무슨 일로 저를 불렀나이까.
주지 스님의 명이라.

자향이 품 속에서 종이를 꺼내니, 산나해가 받아 읽는도다.

늬 읽은 것과 같이, 세간에서 새로운 소문이 떠도니, 다섯 해 전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구미호에 대한 것이라. 민심이 흉흉하여 이 곳의 덕망높으신 스님들께서 백성들을 위로하신 이래로 구미호 소문이 떠돌지 않았으나, 다시금 구미호가 나타났다고 호들갑 떠는 것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그걸 제게 말씀하심은 무슨 이유나이까.
사실 주지 스님께선 구미호에 대해 믿지 않으셨으니, 소문을 듣고서도 목석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분이셨더라. 허나 너와 네 누이를 보신 이후로 마음이 바뀌셔서 구미호를 민초들로부터 떼어놓으려 하시나, 세간에 있는 것은 전우치와 관련된 허황된 소문일 뿐이로다. 그리하여 주지 스님께서 너와 네 뉘에게 질문하라 명하시니, 네가 내 말을 잘 따르는 것을 아시고 너를 내게 맡겼도다.

산나해는 들고있던 종이를 톡 떨어뜨리더라. 자향은 잠시 산나해의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묻되,

그러니 너는 내게 네가 아는 것을 거짓없이 말할지라.

산나해가 우물쭈물하니, 자향이 재차 다그치더라.

네가 지금 말하지 않으면 무(武)를 아는 스님들에게 고초를 당할진데, 나에게 사실대로 말하라.

자향은 잠시 문 밖의 기척에 귀를 귀울이다 조용히 말하니,

내 좋은 것은 말하고, 좋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을지니.
제가 자향 스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나이다. 다만…….

산나해가 고개를 떨구니, 자향은 조심히 산나해를 도닥여주더라.

……그래서 저는 무엇을 말하면 되나이까? 제가 아는 것은 거의 없나이다.
그저 다 털어놓거라.

산나해는 잠시 제 손톱을 세웠다 숨겼다 하다 우물거리며 말을 시작하더라.

스님께서 말씀하신 전우치에 관한 헛된 이야기들은 거의 진실일 것이나이다. 저와 제 누이와, 또 다른 제 누이가 아주 어렸을 때, 그 사내가 찾아왔었으니, 또 다른 제 누이를 죽이고 여시 요물 역시 죽이려 하였나이다.
여시 요물이라 함은 구미호인가?
구미호가 뭔지 모르나, 다만 꼬리가 아홉이고 완연한 사람으로 변하는 요물이었나이다.
계속 말하거라.
그 요물이 저와 제 두 누이에게 늘 말하니, 우치 고 놈이 내 여시구슬을 가져갔으니 너희는 마땅히 나를 도울 것이라, 너희가 날 돕지 않으면 나는 너흴 돕지 않을것이니 그리 알라, 하였나이다.
구슬이 무엇인가?
저도 아는 것은 거의 없으나, 우리 몸에 맥이 뛴다면, 아마 그 요물에겐 구슬이 맥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나이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으나, 그 여시 요물은 구슬을 되찾으려 애를 쓰니, 아무튼 꽤 중요한 것인가하나이다.
그럼 구슬을 가져간 우치란 사람을 본 적 있느냐?

산나해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하더라.

……본 적… 있나이다…….
말해보라.
……. 사내였지만, 그 몸에서 나오는 기백은 사내의 것이 아니요 다만 맹수, 아니 여시의 것과 비슷했나이다. 특히 여시 요물의 것과 흡사하니 요물과 사내가 싸울 때 마다 느껴지는 기척은 마치 한 사람이 둘로 나뉘어 다투는 듯 하였나이다. 저와 제 누이는 그 기운에 눌려 차마 밖으로 나가지 못하였으니, 다만……. 또 다른 누이 하나가…….
그만 해도 괜찮도다.

자향이 산나해의 표정을 보고 말을 자르니, 그는 산나해를 생각한 것이었더라. 산나해는 입을 꾹 다물고 다음 질문만 기다렸으나, 자향은 한동안 말이 없더라.

마지막으로 물어도 되겠느냐.

자향이 천천히 입을 여매, 산나해가 고개를 들어 자향을 쳐다보더라.

구미호, 그러니까 네가 말한 여시 요물이 네 어미냐?

산내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한참만에 되묻되,

어미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나이까.
너를 낳은 여인을 말하는 것이니라.
낳기만 하면 어미가 되는 것이나이까.

산나해의 목소리에 날이 서니, 자향은 하려던 말을 거두었더라.

그렇다면 새로이 물으마, 구미호가 너를 낳은 요물이냐.

산나해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답하되,

그렇나이다.
아무리 요물이라 할지라도, 잉태란 음과 양의 조화가 있어야 나타나는 것일진데, 그렇다면 그 요물은 양기를 어디서 받아 너흴 낳은 것이냐.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이다. 다만, 그 사내가 제 다른 누이를 죽였을 때……. 그 요물….이 말하더이다.

너는 네 새끼를 죽인거라고

산나해는 중놈들이 맡긴 허드렛일을 끝내고 칠성각으로 돌아가되, 멀찍이서 좌물쇠가 풀려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더라. 산나해는 이를 악 물고 즘생의 소리를 내며 곧 튀어나갈 듯 몸을 움츠렸으나, 곧 힘을 풀고 망연히 칠성각 문만 쳐다보더라. 그 곳에 서 있을 수도 없고, 차마 들어가지도 못할 바에야 산나해는 숲 속으로 들어가더라.

그거이 다아 신랑이 없어서 그런거라.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중놈만 산나해 옆에서 떠들어재낀다.

네 누이도 나이가 찼으니, 완연한 여인의 자태를 띄되, 다만 즘생의 피가 섞였으니 우리 당취들이 너흴 밖으로 차마 못 내보내는 것이라. 나중에 불도국을 차리면 네 누이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니, 너무 걱정치 마라.

어린 중놈이 산나해의 등을 치니 산나해는 화들짝 놀라 중놈을 바라보더라.

나는 당취로써 한참 선배라. 늬도 네 뉘 덕을 봐야 않간?

산나해는 중놈을 빤히 쳐다보더라.

햐, 이 놈 버버리에 까막눈이니 답답하도다. 잘 들어보라. 네 누이는 반은 즘생이요, 반은 인간이라. 분명 불도국이 들어선다하여도 냉대를 받을 것이니라. 허나 우리 당취는 그렇게 매정한 곳은 아니니, 너희에게 작은 집이나 마련해주겠다만은, 내가 힘을 써서 큰 상까지 내려주겠다 함이라.

중놈은 한동안 횡설수설하더니 민머리를 긁적이며 산나해에게 말하니,

요놈도 백치가 아닌가 모르겠노라. 불도국을 세우면 내 너의 뉘를 후실로 들이겠단 말이다.

산나해는 더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엉덩이를 툭툭 털고 산을 내려가니, 어린 중놈은 무시당한 것이 분해 길길이 날뛰더라.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중천에 떠있고, 칠성각은 조용하기만 하더라.

내가 쓸모없는 곳에 정력을 낭비했구나, 이런 놈들로 뭘 할 수 있나? 쓸모없는 것들. 쓸모없는 것들. 쓸모없는 것들.

내가 너에게 묻는다.

주지승이 천천히 말을 시작하니, 산나해는 겁에 질려 벌벌 떨더라.

근방의 소문에 대해서는 너도 들었을 터.

자향이 고개를 끄덕이니, 주지승은 말을 계속 잇더라.

길게 말하지 않겠노라. 너흴 찾으러 오는 것이냐.

주지승이 자향에게 눈짓하니, 자향이 산나해와 몸짓으로 대화하더라. 자향은 산나해에게 말하지도 읽지도 말라고 철저히 명한 터, 산나해는 그 말에 순종하니 지금까지 모든 이들이 산나해가 버버리에 까막눈인줄 알고있더라.

결코 자기들을 찾으러 오는 것은 아니라 하더이다.

자향이 공손하게 주지승에게 말하니, 주지승은 인상을 찌푸리더라.

그렇다면 그 구미호는 이곳으로 왜 다시 오는 것인가.

자향은 계속 산나해의 몸짓을 보고 말하니,

그 요물에게서 어미의 정을 바라지 말라 당부하나이다.
어미의 정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자기들을 상처입힌 자가 바로 그 어미이니, 만일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사내가 있을 것이요, 만일 사내가 없다하면 자기와 누이를 죽이러 오는 것이라 하나이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다.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고 통곡하나이다.
사내라함은 전우치를 말하는것인가.
그렇다 하나이다.
그렇다면 너희로 인해 구미호가 오는 것이니, 아무튼 너희를 미끼로 그 여시를 잡으면 되겠도다.
……. 살려달라 하나이다.

자향이 주지승을 똑바로 바라보니, 사실 산나해는 그런 몸짓을 한 적이 없었더라. 오로지 자향이 자신의 마음으로 말한 것이니, 두 즘생을 가엾이 여겼기 때문이었더라. 허나 즘생과 자향 사이에 미리 정한 몸짓을 알 리 없는 주지승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마음이 어지러워졌으니, 법당에는 정적뿐이더라. 바로 그 때 였다.

주지 스님! 스님!

법당 문이 갑자기 열리며 어린 중놈이 헐레벌떡 뛰어드니, 주지승은 그를 엄히 쳐다보더라.

너는 웬 호들갑이냐, 중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나중에 돌아오거라.

자향이 꾸짖었으나, 어린 중놈은 그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제 말만 쏟아내니,

스님, 스님. 큰일났소이다. 웬 여인이 담을 넘어 들어오더니 갑자기 맨손으로 다른 스님들을 찢어발기나이다.
이거 일났도다.

주지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명하되,

그는 분명 구미호라. 허나 사람의 맥과 같은 구슬이 없는 차이나, 구미호는 구미호인 즉, 무(武)를 아는 당취들을 불러 최대한 막아내어라. 구미호를 막는 당취들은 마땅히 불심을 굳게하여 여시에게 홀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 그렇게 시간을 끌면 내 저 두 즘생을 끌고 구미호 앞에 나아가겠으니, 그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이야기는 나눌 수 있으리라.
그거이 무슨 말이나이까? 저 연놈을 구미호 앞에 왜 갖다 바치나이까?

어린 중놈이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주지승의 엄한 모습을 보고 곧 물러나더라.

자향은 가서 겨집도 끌고오라.

주지승이 말하니, 자향은 산나해에게 작은 손짓을 해보이더라. 이는 자향과 산나해 사이에 미리 약속한 것으로 도망하라는 뜻이라. 산나해는 잠시 망설였으나, 곧 여시의 모습을 하고 냅다 달리기 시낙하더라.

저, 저 놈을 잡고, 자향도 포박하라! 칠성각에 가서 겨집도 끌어내라!

주지승이 열이 나 외쳤으나, 어떤 사람이 여시의 발자국을 쫓을 수 있으리요. 산나해가 칠성각으로 내달으니, 그 앞에서 시시덕거리던 두 중놈이 보이더라. 마구 내닫느라 피가 쏠려있는 판에 제 누이를 욕보인 놈들을 보니 더이상 참을 수 없었으니, 눈이 뒤집혔다는 말을 이 때 쓰는가 하더라. 칠성각 안에는 누이가 술에 취해 뻗어있으니, 산나해는 겨집을 들쳐업고 다시 산길을 달리기 시작하더라.

내가 이렇게 손모양을 해보이면, 도망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뜻이니, 너는 이 모양을 꼭 기억하여 도망하도록 하라. 이 손모양을 하는 때라면 분명 나에게도 너에게도 아주 위급한 상황이리라.

지리산 산자락을 얼마나 달렸을까 산나해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으니, 겨집은 반쯤 잠이 깨어 칭얼거리는도다.

이만하면 안 쫓아오리라.

산나해는 땀을 닦으니, 지척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

뉘시나이까?

산나해가 겁에 질려 소리하니, 그 냄새와 기척은 익숙한 것이라.

누이야, 일어나라. 일어나서 나와 달리자.

산나해는 급하게 누이를 깨우니, 다행이 이번에는 말귀를 알아먹었는지 겨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산나해를 보더라.

이럴 시간 없다, 누이야. 우리 도망해야한다.

산나해가 먼저 여시로 변하니, 겨집은 영문도 모르고 산나해를 따라하도다. 산나해가 냅다 앞으로 뛰니, 겨집은 겁에 질린 채 산나해를 따르더라. 하지만 뒤에서 조용하던 기척은 산나해와 겨집이 달리자마자 갑자기 커지니, 둘은 죽을 힘을 다해 내닫더라. 둘을 따라오는 기척은 둘을 잡으려기보다는 사냥하듯 즐기는 것 같더라. 한참을 달리니 자취가 보이니, 그 자취는 사람의 것이라. 산나해는 자향의 말을 어렴풋이 떠올리고, 자취를 따르지 않으려 하였으나, 아뿔싸. 산나해는 그 자취가 누구의 것인지 차마 몰랐더라. 쇠와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겨집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니, 산나해는 그 자리에 멈출 수 밖에 없었더라. 겨집은 자리에서 발버둥치며 애처로이 소리지르니, 붉은 피가 점점히 뿌려져있고 뒷다리는 덫에 맞물려 뜯어지려 하더라.

아이고, 누이야!

산나해가 인간으로 둔갑하여 누이에게 달려가니, 저편에 있는 커다란 여시와 눈이 딱 마주쳤더라. 꼬리의 수가 딱 아홉이라, 산나해는 자기 누이를 떠나지도 못하고 그저 거기에 앉아서 벌벌 떨더라. 구미호는 산나해와 겨집에게 가까이 와서 코를 킁킁대고는 왈,

냄새가 그 때의 새끼니라.

구미호가 깔깔 웃어젖히며 사람으로 둔갑하니, 눈에는 시퍼런 광기가 어려있고 입가엔 푸르게 독이 올라있더라. 산나해는 겁에 질려 비명도 못 지르니, 구미호는 더더욱 웃더라.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산나해가 바들바들 떨며 말하니, 구미호는 웃음을 뚝 그치더라.

내 너희 소문을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구미호는 온 얼굴에 미소를 띄어보이니, 참으로 지어미라 할 것이라. 하지만 산나해는 그 미소가 무엇인지 알기에 저도 모르게 누이를 놓치고 슬금슬금 뒤로 내빼도다.

이 아인 그 계집이려니.

구미호가 정다이 웃으며 덫을 끄르니, 힘이 아니라 요술이더라. 산나해가 앞으로 내닫아 제 누이를 낚아채려 함에, 구미호가 간단히 겨집의 대가리를 발로 짓밟더라. 산나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비명을 내지르니, 구미호는 더더욱 웃는도다.

이번엔 확실히 죽여놓아야지, 내 요즘 벨이 꼴리는 일이 있었으니, 참 잘 되었도다.
하지 마시오! 하지 마시오!

산나해가 울부짖으며 구미호의 다리에 메달리니, 구미호는 크게 크게 웃더라.

하지 말라니, 네 몸에 묻어있는건 피가 아니구 뭐간?

산나해는 놀라 제 몸을 바라보니, 그제야 제가 당취놈들 수놈을 죽이고 나온 것이 떠오르더라.

하, 하지만….. 하지만!
이유가 뭐가 되었던 죽인건 죽인거로다.

구미호는 빙글거리며 겨집의 대가리를 더더욱 밟으니, 꼼틀거리며 앞발로 땅을 박박 긁던 놈이 그 자리에 처지는구나.

이…. 이 요물!

산나해가 울부짖으며 소리치니, 구미호는 어리둥절하게 산나해를 쳐다보더라.

요망한 여시 새끼! 내 누이를 살리도!

구미호는 산나해가 주절거리며 울부짖는 것을 듣다가 뜬금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니,

너는 요물이 아니간? 넌 요물이 아닌? 참 재미있는 아이로다, 참 웃긴 아이로다!

눈물까지 찔끔이며 웃어젖히는구나. 여인의 소름끼치는 웃음과 산나해의 처절한 울음이 지리산 계곡을 메우니, 이 이야기는 곧 퍼져 절간 하나가 다 죽어버린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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