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I 연구과의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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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K기지 제2회 수필대회 아차상 수상작

By user Sawitintohalf

으레 눈 앞에 서있는 현실이 아닌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WoI 연구과 또한 그런 장소이다. 하루 몇 시간씩 인공적인 무지개와 사진 속에서 시간을 죽이는 이들은 당연하게도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른 — 2D의 — 평면 속에서 고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러 정보망 속에서 오가는 욕설과 말싸움, 그리고 혐오스러운 자태를 타닥타닥 보고하다 보면 가끔 속이 매스껍기도 한데, 그럴 때는 탕비실에 가면 좀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번에 선배 한 분이 통째로 놓고 간 풀무원 낫또라던가, 내 자비로 산 허쉬초콜릿 한 봉지라던가를 찔끔 갉아먹고 나면, 다시 업무로 돌아간다.

소문은 이런 장소에게는 먼지와도 같은 존재다.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조금씩 쌓여있고, 빠르게 치워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불 속으로 파닥거리며 들어가는 나방과도 같이 잠시 날아올랐다 사라지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소문을 모은다. 비록 신입이라 다른 이들이 자랑하듯 방대하진 못 하지만. 솔직히, 사람들이 가끔 말하는 가십거리나 연구원들 사이에서 밈meme마냥 돌아다니는 어이없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면 이 분과만큼 유희가 가득한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기에 요즈음에도 우리 분과에서 떠도는 몇 가지 소문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재단 집착 스토커

몇 주 전 선배가 말해주셨던 이야기이다. 놀랍게도, 재단에 집착하던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선배 왈, 뭐랄까, 특이한 종류의 집착이라고 했다. 몇몇은 알 지도 모르지만 초상 웹사이트 중에는 골목길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선배는 그 커뮤니티는 비유하자면 흰개미 언덕과도 같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상부에는 노출된 게시판이 듬성듬성 박혀있다. 당연하게도, 재단이 가장 많이 집중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잘 보이고, 잘 쓰이고, 잘 들키니까.

그리고 그 아래쪽 굴에는 확연히 활동이 없는 게시판들이 수두룩하다. 보통은 몇 번 쓰이고 만 게시판이거나 그 자체가 일회용 허브였던 경우인데, 이 곳을 원점삼는 사건들은 꽤나 역추적하기 난해하다. 그러나 아무도 쓰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사건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깊숙한 곳은 변칙적으로 숨겨진 류의 게시판들이다. 몇몇 이들은 얼기설기 엮인 게시판의 망 속에서 자신만의 둥지를 틀곤 하는데, 그런 류가 이 숨겨진 게시판들이다. 대다수의 비밀 게시판들은 자연적으로는 부재할 조건들을 충족해야만 입장이 가능하기에, 당연히 진입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그런 기괴한 골목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튀는 골목이 바로 "재단골" 이다. 선배 말로는 이 골목은 특이하게도 1인 골목 체제로 운영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1인 골목 체제가 무엇이냐, 간단하다. 말 그대로 사람 한 명이 특정한 게시판을 이용하고, 또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 혼자서만 활동하기에 당연히 그 주제에 대한 집착도 높고, 결과적으로 큰 스케일의 변칙적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번 골목도 그랬다. SCP 재단 그 자체에 애정(愛情)을 찾는 이가 설립한 골목, 그것이 재단골이다.

그 기기묘묘한 현상은 이 골목이 발견된 뒤 몇 주 후부터 시작되었다. 한 남자가 간격을 두고 재단에 잡힌다는 사실이 인지된 것이다. 정확히는, 매우 자연스러운 간격이었다. 보안상 그 남성의 이름은 공개할 수 없으나, 각지의 한국 지부에서 간격을 두고 그 남자가 잡혔다가 기억소거를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지부간 정보 공유가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소한 일은 공유되지 않기에 일어날 수 있던 사태였다.

동시기에 재단골에서도 수상할 정도로 기억소거 리뷰가 작성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국 내의 몇몇 기지 근처에서 자신이 기억소거를 받은 "정황" 이 있다고 주장하는 글들이었다. 대부분 (사실상 전부.) 유저의 추측이었기에, 재단조차 어떤 글이 정확하고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후보고에 따르면 중간중간 거의 확실한 수준의 글도 있었으나, 여전히 글의 정확도는 작성자만이 알고 있는 시점이다.

"사후보고" 라는 말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결국 각 기지는 이 수상한 남자의 행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재단골" 의 존재에 대해 알고 나서부터다. 재단골에서 작성되는 글의 간격과 그 남자의 출현 간격이 아주 미묘하게 맞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거없는 의심으로 역정보 작전에 민간인 확보를 실행하는 것은 — 다른 말로는 예산 낭비는 — 그리 올바른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남자와의 직접적인 인터뷰는 기록할 수 없었다.

간격의 연관성이 밝혀진 이후로, 수사는 흐지부지되었다. 탕비실에서 몇 가지 가설이 맴돌 뿐이었다. "남자는 세계 오컬트 연합에서 보낸 간첩이다!" 라던가, "남자는 사실 인간형을 사용했을 뿐, 인간 외의 존재이며 재단을 구경하러 왔다!" 라던가. 그러나 어찌 알 방도가 생기기 전까지는 전부 의미없는 질문일 뿐이리라.

딱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면, 재단이 남자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품은 이후로 재단골에는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어떤 예고도, 공지도 없이. 마치 손잡이를 돌린 수도꼭지마냥 흐릿하게.

고등어를 만지지 마라

스토커에 이은 고등어에 놀란 독자들도 몇몇 있을 것이다. "고등어를 만지지 마라", 도당체 무슨 문장이길래?

이 소문은 기괴하게도 WoI 연구과 직원들의 목격담에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여러 동기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분과가 조사하는 사이트마다 이상하게도 "고등어를 만지지 마라" 라는 문장이 보이더란다. 정확히는, 가장 말단 직원이 첫 감찰을 시행할 때마다 보인다는 주장이다. 이 "첫 감찰" 이라는 조건도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는데,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첫 감찰 빼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인터넷 세상을 처음 탐방하고 나서는 그 어떤 방법을 써도 "고등어를 만지지 마라" 라는 문장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또는 그것이 직원들의 이론이다.

이런 기괴한 이야기는 당연히 직원 사이의 큰 요깃거리가 되었고, 문장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속속히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이 탐구자들의 길을 막아선 난제는 당연히 "고등어란 무엇인가" 였다. 만지지 말라는 둘째 치고 어떤 사이트에서나 나왔다던(또는 그렇게 주장되었던.) 운명적인 생선 "고등어" 란 무엇인지 과연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우선, 여러 조사가 그렇듯 이 "고등어" 는 모두가 아는 생선 "고등어" 가 아니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했다. 고등어는 무언가의 상징이요, 의미가 집약된 단어이다. 이것이 연구과 직원 일동이 뽑아낸 논지였다. 몇 가지 매체와 서브컬쳐에 정통한 요원, 연구원들의 협력에 따라 걸러지고 남은 가설은 아래 소개할 두 가지 되시겠다.

1. 고등어는 서민을 상징한다.

여러 구전에서 고등어는 서민의 음식으로 사용되었다. 예로부터 한국의 고등어는 많은 어획량과 수로 유명했고, 전통시장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말은 즉슨 여기서 언급되는 고등어는 서민들의 친구이자 쉽게 구할 수 있던 무언가를 상징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여러 연구과 인원들에게만 보이던 이 문장, "고등어를 만지지 마라" 는,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유저들을 방해하지 말라는 밈술사의 시위 시도였을수도 있다는 의견이 이 주장의 정론이다.

2. 고등어는 무기를 상징한다.

좀 깨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물고기를 무기에 비유하는 재담 등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물고기가 바로 이 고등어와 청새치이다.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 영화산업에 가장 큰 혁명을 일으킨 — 동시에 기름을 붓고 백린탄을 던진 — 영화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에서는, 주인공이 고등어 총을 무기로 쓰며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린다. 넷상에서 유명한 게임인 "별의 커비" 에서도 커비가 거대한 고등어로 적들을 썰어버릴 수 있는 능력인 "울트라 스워드" 가 존재한다. 무기의 모습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게임에서는 "냉동 고등어" 가 둔기로서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고등어는 유희적 면에서도, 그리고 문화적 면에서도 흉기로서의 상징이 깃들어있다. 그리하여, "고등어를 만지지 마라" 는 WoI 연구과를 향해 무기를 이용한 위협, 즉 감찰을 중단하라 ("만지지 마라") 라고 하는 메세지라는 의견이 이 주장의 정론이다.

현재도 가끔 신입들이 "고등어를 만지지 마라" 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오곤 한다. 분과의 규모가 막대해지고, 제24K기지 등에 분소까지 나온 시점에서 더 이상 의미없는 소문이긴 하지마는, 가끔 자기 직전 이 주제로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 과연 고등어는 무엇일까? 만지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재단 인원이 쓴 관능소설

마지막이자 가장 쇼킹한 소문이란, 요주의 웹사이트 어딘가에 현직 재단 인원이 연재했던 관능소설 시리즈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문장을 읽는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악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보안 위반, 이념 위반에, 정보 유출이라는 세 가지 금기를 제대로 깨뜨리는 행위가 바로 이런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소문의 원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정확히는, 잊혀졌다고 하는게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시발점에 서있었던 여러 소문들과는 다르게, 이 소문은 몇 년, 몇 달이나 전에 이야기되던 요소들과 혼재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만큼, 지금 이 자리에서만이라도 내가 긁어모은 정보들을 서술하고자 한다.

우선, 모든 판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이전에, 한 재단 인원이 있었다. 그는 WoI 연구과 소속이었고, 커뮤니티 감찰 위주의 업무를 맡았으며, 매우 성실하여 주변의 평판도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업무에 너무 헌신적이었던 나머지, 그 커뮤니티 이용자로서 위장하는 수준을 넘어서게 되어버렸고, 성인웹툰 투고용 초상웹사이트인 "장미향수" 에서 그 절정을 달했다. 결국 갈 때까지 간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 이용 권한을 악용하여 수십 편의 글들로 이루어진 BL 관능소설 시리즈를 연재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여러 판본에서 이용자의 성별, 맡았던 업무, 사용한 커뮤니티는 다르게 나온다. 몇 주 전에 들었던 이야기에서는, 이용자는 여성이었고, 헌신적인 성격이 아니었으나, 동일한 커뮤니티를 이용했다. 몇 달 전 소문에서 이용자는 남성이었고, 완전히 동일한 커뮤니티를 이용했지만, 감찰직이 아닌 현장 요원이었다.

어째서 이런 소문이 도는지 물어보기에는 매우 난해한 소문이기에 (선임들에게 "BL 관능소설" 을 쓴 사람을 봤냐고 물어보는 행위는 상당한 용기를 수반한다.) 결국 나는 나 혼자서 조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조사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소문을 조사하던 도중 그 한계를 맞았다. 어떤 인원이 소설을 썼는지는 둘째치고, 어떤 소설인지조차 알 수 없던 것이다. 사이버-허브를 아무리 뒤진다 해도 구전은 구전으로 남는다. 장미향수에는 지금까지 가히 수백개에 달하는 BL 하렘 소설이 연재되었고, 그 중에서 어느 것이 과연 "그 관능소설" 인가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이기에—

아마 언젠가, 진상을 모를 때 쯤 이 소문들은 사그라들거나, 더욱 기괴하게 변형되어 후배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 때까지 내가 재단에 남아있길 기원하며, 이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기지 인트라넷에 올려진 내 글을 자랑스럽게 바라봤다. 꽤나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의 글임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그런 복잡미묘한 느낌에 끌린 사람들이 누른 추천 덕분에 아차상이라도 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의 특이한 취향을 사람들 앞에 드러냈다는 점은 여전히 수치스러운 일이기에, 양 볼이 살짝 불그스름해졌다. 내가 수치심을 잘 견디지 못 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끼기 직전, 옆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우선, 펄렁이는 검은색, 둔부 아래까지 가려버리는 후디가 눈에 띈다. 후디라기에는 너무나도 얇은 두께가 걸렸으나, 시간이 6월 한여름인 만큼 오히려 저딴 흉물을 입고 다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뭐라고 특정하기 힘들지만, 딱히 무시하기도 난해한 검은 단발머리. 우리 분과 요원인 조승해다.

"오, 도현아! 너가 쓴 글 잘 봤다야. 수필 대회 시작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자 자료조사였나봐?"

"어?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썼다고?"

"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며칠 전에 나보고 장미향수 귀여운 천마님 팬덤 가입 암구호나 알려달라고 하던 놈이, 지금 대놓고 그거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 글을 처쓰고, 이제는 건망증이 와서는 자기가 뭘 썼는지도 모른다고?"

커뮤니티 위장잠입 전문 요원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승해는 무언가 올렸다 하면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신기가 있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어쩌면 저런 능력이 있으니 저 쪽 요원으로 채용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잠시만, 너 말은 그러면…"

"그러면 뭐?"

"내가 조사하던 저 소설 시리즈가 재단 인원이 쓴 글이라고?!"

의외로, 메아리라는 현상은 자주 일어난다.

"그치. 거기 골수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하던데?"

이제서야 이해했다. 내가 조사하던 때, 왜 거기 팬들이 작가 잠적 얘기만 하면 발작을 했는지. 왜 그 팬덤은 암구호를 몇 개나 만들 정도로 겹겹이 보안을 쳤는지. 어째서 소문의 근원이 불명인지. 작품의 작가는, 작가는-

"BL 소설 가지고 키배 뜨는건 휴게시간에 하는게 맞지 않겠니?"

적절한 타이밍에, 심시영 선배님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마 메아리 덕분이겠지.

"아, 시영 선배님 죄송합니다. 이게 그-"

"천마님 그런거 보지 마라. 재미없다."

"앗, 옙. 죄송합니다!"



그런데, 심시영 선배는 내가 뭘 찾고 있는지 도대체 어디서 알아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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