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X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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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874"

"D-8874"

"D-8874"

그 좆같은 이름이 울려 퍼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내 이름이다. 최소 한 달 동안은, 아니 아마 그 이상.

오늘도 어느 실험에 끌려가고 오늘도 어느 죽음의 위기를 넘나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보는 나는 그저 소모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에, 그저 아무것도 아닌 실험용 쥐일 뿐이기에.

한때는 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른 쥐들을 비웃고 있었는데, 그저 우리 안에 갇힌 쥐가 되었다. 남은 것은 멀리 보는 눈뿐.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내게 존재하는 지금이라는 것은 그저 끌려갔다가 끌려 돌아오는 일상, 어느 순간에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외줄 타기. 그렇게 오늘도 나는 아침을 맞이했다.

이번에는 어느 실험에 투입되고 어떤 죽을 고비를 넘을까? 아니, 혹은 어떻게 죽게 될까를 고민하던 무렵, 경비원 하나가 나를 데리러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어 수갑을 차고, 그 수갑의 절그럭거리는 소리에 거슬려서 하며거슬려 하며 경비가 이끄는 대로 발을 움직인다.

평소를 살아가고 평소를 아파하고 평소를 죽어가던 동안의 시간이 나를 옥죈다. 누군가가 그리 살아왔을 시간은 내게 의미 없었지만, 내가 그리 죽어가는 시간은 나에게 의미 넘친다.

불빛을 따라, 그 앞의 사람을 따라,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장점이라고는 그 하나뿐인 눈으로 길을 살폈다. 바닥 한구석에 뭉친 먼지 조각, 온전하지 못한 타일 한구석, 앞에 걸어가는 경비원이 나를 살피는 날 선 시선. 내게 주어진 길은 결국 이런 갇힌 길뿐이다. 그 묘한 풍경이 거슬렸다.

당신은, 당신의 미래를 그린 적 있는가?

나는 그리지 못했기에 묻고 싶었다. 다만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을 뿐. 내 미래는 누구에게 있는가, 누가 아는가, 누구 손에 잡혀있는가.

분명 누군가의 손에는 잡혀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보았던 그 나무처럼. 내 시야 또한 그렇게 잡혀있고 막혀 있을 뿐이다. 그저 내 유일한 재능이 나를 그 박스 밖으로 이끌었을 뿐.

그러나 그 재능이 나를 이 길 밖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내가 두 명의 사람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고, 여기에 끌려와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내 눈은 나를 길 밖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래 알고 있다. 결국 나는 한 달간이 아니라 영원히 D-8874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름으로 죽게 될 테니까. 여기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이미 죽은 사람을 보는 그것과 동일하니까.

그 사람들의 눈에는 이미 내 죽음이 담겨있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경비를 따라 걸었다. 어느새 멈춘 내 발걸음은 이곳이 오늘의 도착지임을 알렸고, 나는 다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순간 일렁인 듯 했다.

문이 열리고 책상과 의자가 보였다. 어느 박사도 보였다.

의자에 앉고 수갑이 벗겨졌다.

의자가 보였다.

박사가 앉는다.

"D-8874, 며칠 전 있었던 SCP-830-KO에 대한 추가 면담을 진행하도록 하겠네."
박사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살짝 톡톡거리며 말했다.

"자네는 그 슬리퍼 나무에 대해 설명을 해주면 되네."

머리가 아파졌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건 누군가 설명한다고 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니까요. 정말 볼 수 있거나, 깨닫기 전에는 남이 전해줄 수 없어요."

"알고 있네, 그래도 자네의 설명을 최대한 듣고 싶네, 이전과 다르게 끊지 않을 테니."

내 대답에 박사가 설득을 시작했다. 결국 내가 어떻게 말해도 그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 같은 겁니다. ████랑 ████████가 일어나서 ████를 ██████하고 ███되어서 발생하는데, 결국 이걸 이해하려면 ████ ████████ ██████████ ██ ████ ██…..
██하면 █████ 될 것은 ███ 하시나요? ███ ████ ███████이 █████되어서 ██하면 ███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손짓발짓을 하며 설명하고 있지만, 그 손짓발짓조차 그 상대방에게 전해질지 의문이다. 그러나 박사가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번 일은 그래도 이 정도로 다 인 듯 하여 오늘 하루의 목숨도 연명하는구나 하는 안도가 있었다.

한참을 그를 설명하다 잠시 지쳐서 멈추었다.

"저기…. 물좀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말을 많이 해서요"

박사는 여전히 이쪽을 진지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설명은 잠깐 멈추고 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제가 목이 말라서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내 어이없음과 짜증이 목소리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박사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

"아니 저기 물 좀 달라니까요?"

"…"

"아니 시발 물 달라고! 물!"

"…"

"저기요? 시발 저기요?"

"…"

뭔가 잘못되었다. 뭔가가 굉장히 잘못되었다. 뭔가가… 아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시야가 흔들렸다.
일렁였다.

여기는, 어제의 그곳이 맞는가? 저 사람들은 엊그제 그 박사가 맞는가?

저 사람들은…? 언제부터 여기에 사람들이 있었던 거지? 이 방에 있던 것은 박사 혼자랑 나…

눈이 아파진다.

박사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니 박사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이 아프다.

눈이 아파진다.

눈이…

시야가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문득 흐르는 액체에 놀라 눈을 비빈 손에는 붉은 액체가 묻어나 있었다.

아니다, 붉은 액체가 아니라…. 검은 액체가. 아니 초록색, 아니… 파란색… 아니… 모르겠다.

모르겠다.

박사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박사 하나, 둘, 셋, 넷, 다섯… 모르겠다. 둘인가? 다섯인가? 아홉인가?

모르겠다.

저 사람?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이는 걸까? 나는 또다시 노래나 부르는 모습으로 보이는 걸까? 언제까지?

문득 섬뜩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가 나를 본 거다. 나를 정확히 쳐다보고 있다. 나에게 감히라며 화를 내고 있다. 그의 장난감을 함부로 손을 댔다고, 그 잘난 눈으로 뭘 할 수 있겠냐고 짜증을 내고 있다.

하늘은 노랗다.
아니 하늘이 어떻게 보이는가?

내가 보고 있는 건 하늘인가? 천장인가? 바닥인가?

눈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한 것일까.

얼마 남지 않는 시야에 남은 색들이 화려하게 변했다가 다시 무채색이 되어 가라앉았다.

하늘이 어둡다.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박사? 아니…. 나무?

아 그래, 나무의 웃음소리다. 나무가 웃고 있는 거다. 아이의 웃음소리 같지만, 이건 나무의 웃음소리다.

나무가 웃는다.

나무가 웃고 있다.






D-8874는 ██월 █일 실종되었다. 아침 배식을 위해 방에 들어갔던 경비원 이██가 발견하였다. CCTV 데이터는 알 수 없는 오류로 삭제되어 있었으며, 이전 실험과 관련된 변칙성의 발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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