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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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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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이어초, 율도국, 소코트라초, 파랑도

개요

차셜길동이그형을이별후의졔군을권하야농업
을심쓰고군법을일사무며그러구러삼년초토을
지내매양식이넉넉하고슈만군졸이무예와긔보
하난법이쳔하의최강하더라근쳐의한나라이잇
스니일홈은율도국이라즁국을셤긔지아니하고
슈십대랄젼자젼손하야덕화유행하니나라이태
평하고백셩이넉넉하야날길동이졔군과의논왈
우리엇지이도즁만직키여셰월을보내리요이졔
율도국을치고져하나니각각소견의엇더하뇨



차설, 길동이 형과 이별한 후에 제군에게 권하여 농업을 힘쓰고 군법을 일삼으며 그럭저럭 삼년초토를 지내니, 양식이 넉넉하고 수만 군졸이 무예와 기보하는 법이 천하에 최강이었다.

근처에 한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은 율도국이었다. 중국을 섬기지 않았지만 수십 대를 이어져 오며 덕으로 교화하고 유교의 가르침을 행하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넉넉했다.

길동이 제군과 의논해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섬에만 처박혀 세월을 보낼 수 있겠냐? 이제 율도국에 쳐들어가고자 하니 너희들의 소견은 어떠하냐?」

『홍길동전』 36장 완판본

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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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의 입구인 이어초의 위치.

지식

특징: 율도는 기준차원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는 주머니 차원이다. 한국의 유인도 중 가장 남쪽에 있는 마라도에서 남서쪽으로 149 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 위치한 면적 2 평방킬로미터의 작은 암초, 이어도에 있는 "길"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이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다.

현재 율도의 입구는 옥리들의 통제하에 있다. 제19K격리구역의 본체는 율도 안에 존재한다. 제19K격리구역은 직제상 한국지역사령부에 속해 있으며, 한반도 권역에서 옥리들이 회수한 경이의 물체나 포획한 능력자 대부분을 수용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현재 제19K격리구역의 구역 이사관은 홍억 박사1다.

성질: 율도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 율도인들은 대다수가 비능력자이며, 옥리들의 제19K격리구역에 말단 잡역노동자로 고용되어 있다. 옥리들은 그들에게 율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을 노임으로 지급하며, 그 토큰은 한국지역사령부 물류지원부에서 생산해 이어초를 통해 반입된 생필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된다. 즉 율도인들의 경제는 생산과 소비 양면 모두 제19K격리구역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옥리들은 율도의 자체적인 식량을 비롯한 물자 생산 능력을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율도인들은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율도어라 한다. 1510년대에 조선에서 건너온 모험가 일당에게 정복된 이후 지배층이 된 조선인들이 사용한 중세 조선어가 그전까지 사용되던 고율도어와 융합되어 현재의 율도어를 이루었다. 현재의 율도어는 문법적으로는 고율도어, 어휘적으로는 중세 조선어의 경향이 강하다. 고율도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데, 고대에 중국 월 지방에서 이어초 주변 해역을 거쳐 일본 규슈에 정착한 니노국 해인족과의 연관성이 시사된다.2 조선인 지배자들에 의해 파괴된 율도의 고유 신화의 파편 역시 이들이 해인족과 조상을 공유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율도 내에는 여러 가지 광맥이 있으며, 그중에는 경이와 관련된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것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광물들은 비단 율도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나, 율도에 매립된 이러한 광물의 양은 다른 곳과 비견하였을 때 상당한 수치로 알려져 있다. 한때 이자메아가 이곳을 점령했을 때,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원주민과 율도기지 수감자들을 징용하여 이러한 광물을 채굴하게끔 했다. 일본제국 시대에 율도에서 발생한 사망자 중 약 30%가 이런 채굴과정에서의 사고(변칙적인 부류와 비변칙적인 부류를 통틀어)로 인해 발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내력 및 관계: 율도 원주민들이 언제 어떤 경위로 율도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고대의 해인족 또는 그 조상인 월계 민족들이 바다를 건너다 풍랑을 만나 이어초를 통해 율도에 들어간 사례가 하나 둘 누적되며 어느 정도의 인구를 이루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그들이 고율도어로 율도를 무슨 이름으로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 이어초가 제주도의 탐라인들 사이의 전설에 풍랑으로 죽은 사람이 가는 사후세계로 전해질 뿐, 율도의 존재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산군이 조선국왕이었을 시절인 1500년 체포된 무법자 홍길동은 탈옥한 이후3 자기 부하들을 다시 규합해 율도 정복에 나섰다. 율도라는 이름도 홍길동 일당이 여기를 점령하고 나서 붙인 이름이다. 이것이 도서관의 문헌들에서 확인되는 최초의 율도에 대한 외부 세력의 폭력적 침탈이다.

홍길동이 율도의 존재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가설은 바로 청해진의 개입이다. 구체적인 경위는 미상이지만, 항해일지를 비롯해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청해진이 홍길동 무리를 이어도에 내려놓은 것은 분명하다. 율도국의 역사서 『율사』(栗史)에서는 이들의 도움을 "개국의 조짐"으로 서술해 놓고 있다.4

이후 시간이 흘러 율도의 정세는 다시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신색 허윤영5이 율도에 도달하며 첫 번째 변화가 시작되었다. 사료67에 의하면, 당시 조선에서 외부 물자와 이주민들을 이끌고 온 허윤영은 홍씨 왕실과 모종의 교섭8을 통해 이주민의 거주를 허락받았다고 전해진다.9

이후 약 오십 년 뒤, 두 번째 변화는 신사환국으로 축출당한 주술파 불어도감 인원들 중 일부가 율도로 흘러들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왕이었던 윤종 홍선은 이들을 받아들이며 고위 관직을 제수했고, 초상적 기술과 자원을 얻어내려고 시도했다. 이에 따라 18세기 조선에서는 유실되고 위축되었던 여러 술법이 같은 시기 율도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발달하게 되었다.10

이후 수백 년이 흐른 1906년, 일본의 이자메아는 한반도의 경이들을 수집, 분류하는 제3차 백택계획을 수행하던 중 제주도에서 이어초 전설을 수집했다. 이자메아는 이어초를 발견한 뒤, 다소간의 시도 끝에 율도에 진입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처음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폭력적 의도가 없음을 율도인들에게 주지시켰다. 하지만 율도의 이용 가능성을 파악한 이자메아는 이어초 포털의 성질을 파악한 뒤 본국에 보고하여 병력 1천 명의 군대를 끌고 왔다. 그들은 홍길동의 4대손인 마지막 왕 홍정을 폐위시키고 율도를 대일본제국 오키나와현 쿠리시마군으로 선언했다(율도처분).

2차대전 패전 이후 율도의 존재는 일본에서 이자메아의 자산을 접수하고 다니던 옥리들에게 감지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거점 마련과 혼란한 정세(중국내전 및 한국전쟁)로 인해 옥리들의 율도 접수는 1950년대까지 미루어졌고, 그동안 율도는 이자메아 잔당들이 계속 다스렸다. 1954년, 옥리들은 율도에 진입해 이자메아 잔당을 손쉽게 소탕한 뒤 율도를 자신들의 위임통치령으로 선언했다. 옥리들은 하나뿐인 "길"로만 외부와 연결되었으며 내부의 공간도 넓은 율도를 자신들의 강제수용소를 짓기에 최적의 부지로 판단했다. 이자메아의 악행의 흔적들을 토대로 삼아, 이제 그들이 그 토대 위에 자기들의 악의 신전을 세웠다.

이후 1987년 대한민국 해운항만청이 옥리들과의 상의 없이 이어초에 부표를 띄우고 이 암초가 한국의 영토임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11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접근법: 율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단 하나, 이어초에 존재하는 "길" 뿐이다. 옥리들이 유일한 "길"을 점령한 상황에서, 옥리들의 허락 없이 율도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길"이 열리는 과정은 경이 그 자체라 할 만하기에 여기에 필히 기록한다. 원래 이어초의 "길"은 풍랑이 심한 악천후 때, 이어초 주변을 지나가는 선박의 선원이 악천후로부터 생존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품으면 그것이 현실개변으로 작용해 열리기 시작한다. 높은 파도 사이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이어초가 선원에게 똑똑히 보이는 것이 그 "길"이 열리는 첫 단계다.

선원이 이어초에 상륙해 보면 자갈과 바위밖에 없는 탁 트인 이어초 한가운데에 돌을 쌓아 만든 사당이 있다. 이 사당은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당은 한 칸 짜리 건물이며, 문이 달려있지 않아 그냥 들어갈 수 있다. 사당 안에는 작은 식탁이 있고, 그 위에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쌀밥 한 그릇이 놓여 있다. 이 쌀밥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먹는 것이 "길"을 여는 둘째 단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이 숨을 곳도 없는 작은 암초에 막 지은 쌀밥이 있으니 섬뜩함을 느낀 선원들은 이어초에서 달아나 폭풍우에 맞서는 편을 택한다.

밥을 먹고 사당에서 나오면 율도에 들어와 있다. 율도의 입구에는 기준차원의 이어초와 똑같이 생긴 암초와 사당이 존재한다. 암초는 잔잔한 바다 위에 있으며, 바다 건너 율도 본토로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다. 현재는 옥리들이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왕복 16차선 도로의 너비에 상당하는 거대한 다리가 되었다. 율도 안에서는 악천후가 발생하지 않는다. 최소 한 명 이상의 사람이 사당을 통해 이동하는 순간 기준차원의 이어초 위에 존재하던 생물이나 사물은 율도로 함께 이동한다.

율도에서 나오기 위한 방법은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12 사료에 의하면, 가장 최초로 나타나는 형태는 주머니 차원의 암초에서 바다에 뛰어내리는 것이다. 이때 투신자는 바다에 입수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차원의 이어초에 추락한다. 이 방법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투신자가 낙사할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이따금 투신자가 기준차원의 이어도가 아닌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13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방법은 사당에 토끼 간을 바치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이어초가 본디 육지였으며 그곳에 용왕이 살았고, 용왕의 공주가 아프자 거북이가 토끼 간을 구해 바쳤다는 전설14이 전해지는데, 이 전설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15 이 방법은 홍길동이 율도를 정복했을 무렵부터 서서히 등장16했고, 불어도감의 잔당들이 율도에 들어오면서 복잡하고 교묘한 제례로 탈바꿈해나갔다.

현재 옥리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사당에 향불을 피우는 정도로 단순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전 율도에서 노역했던 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방법은 이상사례조사국에서 정착시킨 듯하다. 실제로 조사국 율도기지를 개축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는데, 정황상 이때 나가는 방법을 초상적으로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관찰 및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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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某를 離於礁로 인도하다

茫洋육백육십년 皐月 열하룻날. 맑음.

 바다가 고요하다.

 홍가 아무개가 전일의 약조대로 졸개들을 이끌고 그 해안가로 나왔다. 주수막하의 지시에 따라 그들을 마가라 안으로 들이게 하였다. 상당한 수의 무리다. 홍은 자기 졸개들과 떨어져 부수와 함께 막하를 뵈러 갔다.

 부수께서 이어초로 간다고 말했다. 홍과 그의 무리를 그곳에서 내릴 작정이라는 것이다. 이어초는 암초로, 탐라에서는 그리 멀지 않다. 여기서부터 섬 해안가를 돌아 남하하면 바로 갈 수 있는 곳이다. 허나 깊은 물 속에 잠겨 있어, 평범한 배에서는 큰 파도가 일 때에나 그 모습을 목도할 수 있는 곳이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판단이다. 홍이 무슨 이유로 삼한 땅을 떠나 그 암초로 가려는지 역시 샹긔 듣지 못하였다. 부수의 얼굴이 좋지 못함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허나 감히 내가 간여할 문제가 아님을 안다.

 선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은 사실이다. 홍의 무리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평범한 백성이 아님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만사에 느긋한 욱마저 금일은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목전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다. 홍이 범상치 않은 사내임은 이미 알아보았다. 어제 그가 마가라를 불러내었을 제, 내가 그를 처음으로 보았다. 입때까지 이 넓은 공간을 지나다 보면 사람에게는 눈이란 것이 생긴다. 소위 혜안(慧眼)이라는 것이다. 누가 어떤 심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홍은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과는 다른 힘을 가진 자다.

 순덕은 홍이 무슨 생각이건 간에 그들의 무리를 어서 이어초에 던져두고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말한다. 나는 상관없다고 답하였다. 마가라 내에서 준동을 부리려고 한다한들 감히 청해대사의 안전에서 삿된 생각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해류의 물결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계획명 후(後)-요오 계획

입안년  일일년

주도자 히라누마 대좌

목적

 사년 전, 황국의 성스러운 대륙 진출이 진일보함에 따라 의 만주국이 건국되었다. 세계의 경탄을 받아 마땅한 왕도낙토의 성립은 저능한 외지세력의 비난에 직면하였고, 이에 따라 우리 이상사례조사국은 황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전투군을 양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의 적들과 연합군 은비구상은 자국의 초상 자원을 활용하여 그들만의 초상군대를 만든 바 있다. 적들의 정신과 사기는 마토 정신에 견줄 바 못 되므로 그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게도 다가올 마찰 등에 대비할 필요성은 존재한다.

 쿠리시마는 백택 계획 3호, 그리고 초대 요오란 계획에 따라 대일본제국의 군현으로서 현재도 다양한 초상자원의 근간이 되고 있는 곳이다. 기준차원에 속해 있지 않으며 현재로써는 우리들 이상사례조사국만이 이 공간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이곳이야말로 이상사례조사국의 새로운 출발지가 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제언하는 바이다.

자산

 초대 요오란 계획에 따르면 쿠리시마에는 석탄, 철 등의 비초상자원 뿐만 아니라 현실성을 왜곡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광맥이 존재한다. 쿠리시마가 대일본제국의 군현이 된 1907년부터 해당 광맥들은 쿠리시마의 원주민들과 수감자들을 인부로 하여 채굴되고 있다. 이러한 광물 자원들이 본 계획에 큰 도움이 되리라 의심치 않으며, 또한 쿠리시마인들 역시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써 본 계획에 자신의 육신을 기꺼이 바칠 것이다.

 그 밖에 필요한 자산은 다음과 같다.

  • 아시부네기관과의 협력으로 얻은, 인체 개조 실험 사례
  • 이상사례조사국 전 기지에서 수감 중인 인간형 초상자원 30명(실험용)
  • 총독부의 협력으로 얻은 불령선인 및 신원불명자(실험용)
  • 자격 요건에 합당한 생물학자, 화학자, 의학자
  • 쿠리시마기지 개축 비용

결과

 성공. 실험이 시작되었으며, 실험체들은 수년 내로 건실한 군인들로 재탄생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쿠리시마는 황국의 정신을 이식하여 세계 만방에 그 위용을 떨치는 황군의 요람(揺籃)이 될 것이다.


율도 근처에 이상한 생물들이 득시글하다는 소문 들었나? 옥리들이 열심히 잡아넣고 격리해도 끊임없이 발견된다는데.

그래서 저번에 제주도에 난 "길"을 통해서 이어도 근처 해역까지 나가봤네. 한 30분 지날 때까지는 솔직히 아무것도 못 봤네. 바람도 선선하고 파도도 잔잔해서 정말 어떤 낌새도 안 느껴지더군. 돌아가야하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어, 그렇게 생각하던 바로 그때 수면 아래에 뭔가 스쳐지나가는 걸 봤다네. 아주 느리게 헤엄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니까 바로 달아나더군. 마치 날 정탐이라도 하러 온 것처럼. 그걸 자네들이 봤어야하는데. 정말…

그건 인간이었어. 아니, 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의 형태는 취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심하게 비틀린 상태로…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게 인간이었다면 유일하게 남은 인간스러운 측면은 얼굴 뿐이었을 걸세. 달아나며 헤엄치는 모습은 절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온몸의 뼈가 다 바스라진 것처럼 움직이진 않겠지, 인간이라면.

그리고 그놈 눈동자. 풀린 동공에 마치… 뭐랄까, 바다코끼리의 흐리멍터엉한 눈깔을 아나? 그런 눈을 하고 있었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외양… 소름이 돋더군.

대체 이자메아가 수감자들한테 무슨 짓거리를 한 건지 아는 자가 있나?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뿐이지, 우리 생각보다 더한 걸 꾸미고 있었는지도 모르네. 아니면 그저, 그 기지에 있던 인간들이 죄다 싸이코패스밖에 없었는지도.

— 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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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들은 몰랐지만, 바르사름들은 율도를 알았어. 나도 그들에게서 율도의 존재를 들었지. 그 자세한 과정은 모르겠지만, 그들 나름의 율도로 출입하는 방법17이 있었던 것 같아. 나? 난 한 번도 안 가봤지. 가봤자 좋아할 것 같지도 않았고.

율도인들은 느긋하고 쾌활한 사람들이었다고 해. 신비한 현상과 존재와도 친밀했고, 괴력난신이랍시고 배척했던 조선과는 달리 이들을 좋이 대우했다고들 하더라. 아마 그래서 바르사름들이 그곳을 좋아했겠지. 글쎄, 그들이 묘사하는 것만 들어보면 그곳이 아마 너희들이 원하는 그런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어. 경이로운 존재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공간. 단지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공격당하거나 구금되지 않는 곳. 아마 그런 곳이 맞았을 거야. 바르사름들은 과장하는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요근래 와서는 거기에 조금은 가보고 싶어지더라. 항상 이어도 근처에서 유영하던 그 친구들이 없어지니까 더 그런지. 바르사름들에게 율도인들이 좋은 친구였던 것처럼, 내게도 바르사름들이 그랬거든. 가끔은 그리워져.


총괄: 율도 해방의 필요성과 그 가능성에 대하여

율도의 현 상황은 옥리들이 이야기하는 정상성과 인류의 수호라는 것이 그 번지르르한 베니어합판을 들어내면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폭로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제19K격리구역에 갇혀 있는 능력자들과 경이들에 관해서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악의적 능력자나 위험한 경이도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가 경이의 지식이 정상세계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들로부터 인류가 피해를 받는 것을 진정으로 막기 위해서는 그것에 관한 지식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지식이 보급된 뒤에도 악의적 능력자나 위험한 경이는 분명히 공동의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옥리들은 한반도 권역에서의 격리 전반을 율도에 떠넘기고 있다. 율도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위험한 업무의 최전선에 내몰리고 있으며, 제19K격리구역에서 격리 누출이 발생하여 주민들이 다수 희생되는 사고도 몇 번이나 일어났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옥리들은 한반도의 초상적 치안의 유지라는 목표를 율도와 그 주민들을 착취함으로써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초상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정상세계에서도 군기지나 공항, 발전소 등 위험한 시설의 효용은 국민 전체가 누리면서, 그 시설로 인한 위험부담과 민폐는 시설이 입주한 지역 공동체에 떠넘겨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즉 이것은 모든 압제적 체제들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고, 옥리들이 압제자임과 옥리들의 체제가 압제적 체제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율도의 존재를 알게 된 한반도 거주자에게는 율도의 해방을 추구해야 하는 의무가 필연적으로 부여된다. 그러나 그 필연적 과제인 율도의 해방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전술을 취할 것인지는 아직 뾰족한 방법이 없다. 부끄럽게도 지금 우리는 옥리들에 비해 철저히 열세에 있고, 끝이 모를 분서꾼들과의 항쟁이 진행 중이기에 당장 율도 해방에 대한 어떠한 작업을 수행할 역량이 없다. 이러한 당장의 역량의 부족을 현실적으로 인식하여, 일본의 청대장의 손이 명정가를 옥리들과 공동관리하기로 합의한 것처럼, 율도에 대해서도 한국지역사령부와 능구렁이 손 사이에 그런 협의를 진행하여 향후의 율도의 완전해방의 전단계로 삼자는 안이 논의된 바 있다. 하지만 명정가와 율도는 그 상황이 전혀 다르다. 명정가는 뱀의 손과 옥리들에게 모두 정체가 명확하지 않아 공동의 위협대상이지만, 율도는 옥리들이 완전히 장악하여 자신들의 필수적 시설로 사용하고 있기에 그와 같은 양보를 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현재로서는 율도의 존재를 알려서 모든 사람에게 율도 해방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활동을 위주로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다. 초상세계의 주요 공동체들 중 옥리들의 영향에서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벗어난 곳들의 현지세력과 연대관계를 구축하여 주기적으로 선전전을 벌이는 것이다. 율도의 존재와 상황을 알게 된 시점에서, 당신에게 한반도 초상세계의 상황은 문명을 가장한 야만이다. 이는 율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초상세계 및 정상세계의 모든 장소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바이다. 세상에는 동산의 안팎이 따로 없으며, 우리 모두가 뱀이 되어야 한다.

의문점

   율도가 한 때 기준현실에 정박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제주도에서는 이어도가 큰 육지였다가 물에 뒤덮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만약 그 전설이 정말이라면 옛 제주 사람들이 율도에 대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율도의 첫 거주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또 하나의 질문을 파생시킨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어초의 포탈을 만든 장본인일까? 초기 율도에 대한 문건은 방랑자의 도서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뜩이나 다른 경이 공동체에 비해 사료가 적은 율도이기에, 이어초 포탈의 진짜 유래를 쉽게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떤 방랑자들은 이어초의 포탈이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어초 포탈의 사당과 밥과 같은 요소는 자연적이기보다는 인위적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요소들 자체로부터 포탈의 기능이 도출되는 것인지, 아니면 요소들이 율도의 어떤 능력을 제어하는 도구로써 기능하는 것인지 더 알아봐야 할 것이다.

만일 이것이 정말 자연적으로 조성되었다면, 그 포탈을 조성한 율도 자체에 어떤 의지가 존재하거나,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을지 조사해봐야 할 것이다.18

   한편, 율도의 양생술은 정말 실전된 것일까? 입수한 이상사례조사국 문건을 살펴보면, 율도를 일본의 영토로 선언하기 직전, 홍정은 왕궁 서고에서 특정한 서적들을 모조리 불태웠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상사례조사국은 끝내 그 분서 행위가 어떤 주제를 은닉하기 위해서였는지 알아내지 못했으나, 우리는 그것이 양생술을 은닉하기 위함이라고 추측한다. 이처럼 양생술은 1906년 완벽히 모습을 감추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으나, 허윤영을 둘러싼 몇 가지 정황 때문에 의문을 가질 충분한 여지가 있다.

   현재 반도에서 살아가며 자신이 율도 출신이었음을 숨기거나, 혹은 아예 모르고 있는 이들이 있지는 않을까? 조선의 이태왕가와는 달리 율도의 홍씨 왕조는 율도 처분과 동시에 단순한 평민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때 1910년 홍정의 삼남이었던 진량대군 홍태임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가 율도를 탈출한 것이었다면, 어쩌면 그처럼 율도를 떠나 반도나 제주도, 혹은 일본 열도 등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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